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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행복한 삶이란
제목 [이야기] 가난은 자랑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부끄러워할 일도 아니다 날짜 2010.06.01 10:05
글쓴이 관리자 조회 2798

[1] <10-06-01> 10:02~

 

 

 


가난은 자랑할 일이 아니다. I am 지나

그러나 부끄러워해야 할 일도 아니다...


'과거의 망령에서 벗어나자, 그런 일은 이젠 떠올리지 말자' 생각했지만 현재의 내가 행복한 것은 과거의 내가 불행했기 때문임을 잘 알고 있기에 힘들지만 다시 그 이야기를 꺼내려고 한다.

'진정한 위로는 자기보다 더 불행한 사람을 보는 것'이라 했던가? 
난 지금 희망을 잃고 괴로워하고 있는, 나보다 어린 친구들을 위해 이 글을 쓴다. 



난 비교적 큰 고생 없이, 평범한 가정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부모님은 열린 사고를 가진 사랑이 많은 분들이셨고 아버지의 사업은 나날이 번창하고 있었다. 우리에겐 아무런 문제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무리한 투자로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살고 있던 아파트를 팔고 춥고 허름한 월세집으로 이사했다. 부모님이 빚쟁이를 피해 어디론가로 떠나신다 했다. 할머니와 남동생은 눈물을 감추지 못했고, 난 대문 뒤에 숨어 울음을 삼켰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가스렌지에 물을 데워 몸을 씻어야 하는 집에서 살았다. 유치원 때부터 학원을 세 군데씩 보내주셨던 부모님이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가자 외국어 학원 한군데의 학원비를 대는 것조차 버거워 하셨다.

그럼에도 영어만큼은 절대 포기하고 싶지 않아 울고 불고 화를 내며 보내달라 했다. 2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학원에 갔다. 학교를 마치면 거의 학원에서 살았다. 그러다 보니 외국인 선생님과 친구가 되었다. 2년 후엔 더 이상 올라갈 반이 없었기에 등록은 안 하고 그냥 가서 놀았다. 시험 공부를 할 땐 영어 교과서를 통째로 외웠다. 비디오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같은 영화를 반복해 봤다. 지금같이 자막 조정이 편리한 DVD 플레이어 같은 건 없던 시절이었기에 TV에 종이를 붙여 자막을 가렸다. 들릴 때까지, 그들이 말하는 속도로 말할 수 있을 때까지, 그들의 말투와 표정까지 따라했다. 한국 노래보다 영어로 된 노래를 훨씬 많이 들었고, 가사도 모조리 외웠다. 5개국의 친구들과 펜팔을 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 매번 직접 우체국에 가서 편지를 부치는 방식으로 연락을 주고 받았다. 혹여나 편지가 끊어질까봐 매번 정성을 다해 편지를 쓰고, 꾸미고, 한국의 풍경을 담은 예쁜 엽서도 자주 선물했다. 그렇게 3년을 보내고 나니 처음엔 책에 나온 예시글을 그대로 베껴 적었던 영작 실력이었는데, 나중엔 혼자 힘으로 하고픈 말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생각도 영어로 하고, 욕도 영어로 하고, 혼자서도 영어로 중얼거렸다. 그렇게 고등학교 3년을 보내고 나니 '외국에 살다 온 아이같다'는 말을 들었다. 

대학을 입학할 때도 집안 형편은 전혀 나아지지 않은 상태였다. 우리 집 사정을 딱하게 여긴 친척분이 입학금을 내주셔서 겨우 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 후부턴 내 힘으로 등록금을 벌어야 했다. 눈에 띄는 영어 웅변 대회에 모조리 참가했다. 실력 향상이나 경험을 위해서가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대회에 나갔다. 그렇게 번 상금으로 등록금을 냈다.

대학교 3학년, 재기를 포기하지 못하던 아버지가 내 등록금마저 날려버리셨다. 허탈했지만 당시 육체적 정신적으로 무척 피곤했던 나는 '차라리 잘 됐다' 싶은 마음으로 휴학을 하고 작은 중소기업에 통역으로 취직했다. 그러자 내 앞으로 신용카드가 나왔다. 당시엔 어떤 직장이라도 쓰기만 하면 카드가 발급되던 시절이었다. 아버지께서 생활비가 부족하다며 잠시만 빌려쓰자 하셨다.

그 후에 대기업 출강을 시작했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야 하는 힘든 일이었지만 근무 시간에 비해 급여가 높았기에 좋다고 다녔다. 그렇게 휴학 1년 동안 번 돈을 집에 드렸다.

복학을 한 후에도 일을 놓지 않았다. 새벽에 일어나 강의를 하고, 지하철 버스를 세 번 갈아타고 두 시간 떨어진 학교로 갔다. 복수 전공 때문에 한 학기에 27학점, 30학점을 들었고, 피곤해서 수업 시간 내내 졸았다. 수업과 과제를 끝내고 집에 가면 자정이 넘은 시각이었기에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은 언제나 서너시간 뿐이었다.  

주말반 수업이 돈이 더 된다는 말을 듣고 주말에도 일을 했다. 3시간 수업을 하기 위해 부산 우리집에서 버스로 왕복 4시간이 걸리는 울산의 학원까지 강의를 하러 갔다.

그러던 중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아버지가 내 명의로 낸 카드의 갯수가 10개에 달했다는 것, 그렇게 빚을 내어 한 투자가 모두 실패했다는 것이었다. 내 앞으로 '1억'이라는 빚이 생겼다. 그 때 내 나이 스물 셋이었다.
 
그 땐 정말로 생을 놓고 싶었다. 남들보다 열심히 살았는데 내게 돌아오는 건 불행 뿐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2년간 사귄 죽도록 사랑했던 사람과도 이별했다. 부모님 인생은 이미 망가졌지만 내가 학교 졸업만 하면 나아지겠지, 제대로 취직하면 괜찮아지겠지 하는 희망 하나로 살고 있던 나였다. 또래들에 비해 많은 돈을 벌면서도 단 한 번도 제대로 써보지 못한 내게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신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옳고 그름 따윈 세상에 중요치 않은 것 같았다. 삶의 의미가 없단 생각이 들었다. 가장 아름다워야 할 20대를 통째로 희생해도 갚을 수 없는 돈이었다. 그렇다고 몸을 팔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그냥 놓으려고 했다.

그런데... 놓지 않았다. 차마 죽을 수가 없었다. 그 동안 열심히 살아온 게 너무 억울해서, 남겨질 엄마가 불쌍해서 그럴 수 없었다. 하지만 그 후 3년은 내 인생에 가장 끔찍한 시간들이었다. 참 많은 더럽고 추잡한 일들을 겪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억울했던 건 채권자들이 빚진 돈의 한푼도 써 본 적 없는 나를 '명품에 환장해 카드 빚더미에 오른 정신나간 젊은 여자' 취급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도 내 손에 남는 건 한 푼도 없었다. 그저 하루 하루가 지옥이었다. 

그런데 인생은 예상하고 계획한대로만 흘러가는 것이 아니었다.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으면 앞으론 올라갈 일밖에 없다...' 그렇게 믿었다. 그래서 비록 가르치는 일이 꿈은 아니었지만 그 자리에서 열심히 했더니 인정을 받기 시작했고, 새로운 기회들이 생겨났다. 조금씩 내가 쓸 수 있는 돈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저축은 하지 않았다. 그저 빚 갚고 저축하는 것으로 20대를 보내버리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았다. 젊은 시절을 그저 소모했단 생각이 들 것 같았고, 결국엔 부모님을 원망하게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조금만 돈이 모이면 여행을 다녔다. 그렇게 쓰지 않으면 모인 돈은 결국 어딘가로 표도 안 나게 새어나간다. 빚이 있는 집안이란 그런 것이다. 덕분에 돈은 못 모았지만 주변의 어느 친구들보다도 많은 세상을 봤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굉장한 부자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그러던 중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당시의 난, 세상을 보는 시선이 점점 냉소적으로 변해가고 있었고, 내 껍질만 보고 다가오는 남자들에게 환멸을 느끼고 있었으며, 연애감정이란 것도 메말라 가고 있을 때였다. 근데 이 사람은 뭔가 좀 달랐다. 가진 건 별로 없었지만 선하고 순수했다. 대화가 잘 통했고, 유머감각이 있었고, 나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 여행과 책을 좋아했다. 어느 순간 '이 사람이라면 평생 같이 늙어가도 즐거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동안 너무 힘들게 살았으니 결혼하면 고생할 것 같은 사람, 한 마디로 재력이 없는 사람과 결혼하느니 차라리 혼자 살겠다 단언하던 나였다. 그랬던 내가 그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은 주변인들은 꽤 충격을 받은 듯 했다. 물론 잘 다니고 있던 대학에 사표를 낸다는 걸로도 말들이 많았다. 그 결정을 내리기까지 참 많은 고민을 했고, 막연한 미래가 두렵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너 분명 후회할 거다."라고 단언한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오늘, 
서른 살의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 되어 있다.
스물 세 살의 불행했던 나는 절대 상상하지 못했던 그런 삶이다. 

아직도 물질적으론 풍족하진 않다. 
아직도 갚아야 하고 채워야 할 일들이 많다. 
그러나 '만들어가는' 재미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처음부터 다 갖고 시작하는 사람들은 가지지 못할 기쁨이다. 
이젠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있고,
철은 좀 없지만 나 밖에 모르는 귀여운 우리 던서방과
"이번 휴가 땐 어디로 갈까?"를 고민하며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  


현재의 삶이 끔찍하다고 좌절하지 말자.
함부로 미래를 단정지어 생각하지 말자.
지금이 힘들수록 나중이 더 좋아질 가능성이 높다. 

'젊을 때 죽도록 고생하고 나이 다 들어 행복한게 뭐가 좋을까?' 싶을수도 있지만
나이 들어 불행한 건 젊어 고생하는 것보다 훨씬 힘들고, 재기 또한 어렵다.
 
지금 아무리 힘들어도
앞으로 나아질거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 한 삶은 나아진다. 

절대로 희망을 포기하지 말자. 
긍정적인 사람은 반드시 행복해진다.
  



 

[원글] : http://heyjina.egloos.com/359675 by http://heyjina.egloos.com/

 

 

 

[출처]: http://www.myinglife.co.kr/bbs/bbs.htm?dbname=B0092&mode=read&premode=list&page=1&ftype=&fval=&backdepth=&seq=45&num=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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