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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제목 밑줄 치는 것은 구도의식이다 날짜 2009.09.12 22:16
글쓴이 관리자 조회 862

40. 밑줄 치는 것은 구도의식이다 - 작은 버릇들

 

 

 

         고서   김 선욱

http://www.myinglife.co.kr

 

 

 

밑줄 긋기에 담은 꽤 거창한 의미들

 

 

나는 밑줄 긋는데 필사적이다. 나중에 아이들이 내가 쳐 놓은 밑줄을 따라가며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라는 기대 속에서 밑줄을 긋기 시작했지만, 이제 그런 거창한 목적은 잊은 지 오래다. 내용은 사라지고 뼈대만 남았다고 할까. 내가 감동을 받은 부분에 밑줄을 쳐놓는 게 중요하지 반듯하게 밑줄을 치는 것은 덜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깨끗하게 밑줄을 치려고 심혈을 기울인다.

 

나는 주로 전철 안에서 책을 읽는다. 때문에 흔들리는 전철 안에서도 자를 대고 밑줄을 친다. 전철 안에서 밑줄을 똑바르게 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앞뒤로 때로는 좌우로까지 흔들리는데 마침 막 밑줄을 치는데 그런 움직임이 생기면 삐뚤어지거나 의도하지 않은 곳에 줄이 쳐진다. 나는 조금도 삐뚤어지게 않게 밑줄을 치려고 온 신경을 다 쓰고 있다. 이렇듯 밑줄을 치는 것은 이제 내게는 숭고한 하나의 의식이다.

 

모든 것은 습관이다. 밑줄을 치는 것도 습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 밑줄 치는 일은 내게 있어 하나의 의식처럼 행해진다. 내가 처음부터 이렇게 깔끔하게 밑줄을 치기 시작하는 것은 아니다. 점점 더 발전된(?) 것이다. 처음에 책을 읽을 때는 밑줄을 치지 않았다. 그러다가 아이들에게 아빠의 사랑을 보여주자는 의도에서 밑줄을 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습관적으로 밑줄을 쳤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하나의 구도 의식이 되었다.

 

좀 더 어려서 책을 읽을 때 전혀 밑줄을 치지 않았다. 밑줄을 쳐 놓으면 나중에 책을 다시 읽게되었을 때, 저절로 밑줄 친 부분을 더 의식적으로 읽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과거의 생각이나 감동에 영향을 받게 될 지도 모르는데, 그걸 피하고 싶었다. 의식이 확장된 후에는 중요하게 생각된 부분도 사소하게 느껴질지도 모를 터인데 자신의 어리석음을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언제나 새로운 기분으로 읽을 수 있도록 책을 깨끗하게 두고 싶었다. 누구나 그렇듯 책을 깨끗하게 보관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관점이 바뀌자 생각이 바뀌었다. 여동생에게 책을 빌려준 적이 있다. 밑줄 친 부분 때문에, 다음 페이지에는 어떤 부분에 밑줄이 쳐져 있을까 궁금하여 책을 재미나게 빨리 읽게 되었다는 여동생의 얘기가 모든 것을 바꾸게 했다. 나중에 아이들에게 돈이나 재산을 물려줄 생각이 전혀 없던 나로서는 그 보다 더 가치 있는 책을 물려주고 싶었다. 내가 직접 읽었던 책들을 남겨주고 싶은데 그저 아무런 흔적도 없는 책을 남겨주고 싶지는 않았다. 아이들이 커서 책을 읽게 되었을 때, 여동생이 그랬던 것처럼 밑줄을 따라가며 재미나게 책을 읽는다면 혹 아이들이 책을 더 사랑하게 될지도 모르고, 또 내가 읽었던 책을 읽으며 깨달음의 길을 걸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졌던 것이다. 내가 읽은 책들은 내 삶의 흔적이자 내 정신적 성장의 궤적을 보여주는 것이다. 책들이 깨달음의 길을 보여준다. 내가 나중에 책을 다시 읽는다는 관점에서 아이들이 내가 남겨준 책을 읽으며 정신적 성장을 꾀하고 깨달음의 길을 걷게 한다는 관점으로 생각이 바뀌게 되자 밑줄을 치는 행위가 큰 의미가 있게 된 것이다.  아이들이 밑줄 속에서 아빠와 호흡을 같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내 반듯한 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가급적 책에 밑줄을 꼭 남긴다. 어떤 부분은 감동을 받아서라기 보다 별 의미 없는 데에도 밑줄을 친다. 어디선가 들었던 것이라든가, 문맥이 이상하다든가, 책 제목을 인용한 부분이라든가 밑줄의 의미는 다양하다. 밑줄의 뉴앙스는 밑줄 친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다. 그런데 밑줄을 치는 데는 필요한 도구가 있다. 바로 자와 펜이다.

 

밑줄을 쳐야 할 때에 자와 볼펜이 없으면 안되기 때문에 항상 챙겨 다니려고 노력을 한다. 처음에는 자를 무수하게 잃어버렸다. 책 갈피 속에 끼워 넣고 책을 달랑달랑 들고 다니다 보면 어느새 빠져나가고 없는 것이다. 가방이 없으니 더 빠져나가기가 쉬웠던 것 같다. 자를 참 많이 샀다. 그런데 이제 자를 사지 않은지 몇 년이 지났다. 읽는 때를 달리하는 곳마다 자를 따로 마련했다. 그러자 자를 잊지 않고 꼭 챙길 수가 있었다.

 

자가 몇 개인고 하니 5개였다. 책 읽는 시간대별로 자가 따로따로 있다. 전철에서 책을 읽을 때 사용하는 자가 하나 있다. 사무실에서 읽을 때 사용하는 자가 또 하나 있다. 집에서 잠자기 전이라든가 휴일에 읽는 책을 읽을 때 같이 사용하는 자도 있다. 화장실에서 읽는 책에도 따로 하나가 있다. 예비로 항상 호주머니에 넣어가지고 다니는 것이 또 하나 있었다. 자를 하나만 사용했을 때는 깜빡 하고 못 챙겨나올 때도 있었다. 예를 들어, 집에서 읽는 책을 읽을 때 사용하다가 그 책 속에 끼워 두었는데, 다음날 출근할 때 잊고 챙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 비극이다. 명함을 이용하거나, 나중에 교통카드가 나왔을 때는 교통카드를 사용하여 밑줄을 치기도 했는데 그게 영 불편했다. 길이가 짧아서 한번에 밑줄을 치지 못하고 두번을 나눠서 쳐야 하니 삐뚤삐뚤하게 되고 또 깔끔하게 연결되지도 않았다. 이런 일을 한두 번 겪으면서 예비로 작은 자를 사서 가지고 다녔다. 예비 자도 또 못 챙기면 다시 그런 불편을 겪게 된다. 어떤 경우에도 자를 잊고서 허둥지둥대지 않기 위해서 읽는 책마다 자가 따로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래서 읽는 책마다 따로 자를 하나씩 마련했다. 그러고나서부터는 자를 챙기지 못해 밑줄을 치지 못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늘 갖고 다니면서 사용하는 자는 눈금이 없어진 지 오래다. 손 때로 반들반들 한 게 감촉도 좋다. 내 독서도구 보물 제 1호다. 나중에 아이들에게까지 물려줄 수 있으면 좋겠다. 지금 갖고 있는 자들은 다 좋다. 몇 년에 걸쳐 고르고 골라서 산 자들이라 그런 것 같다. 그런데 집에서 읽는 책 속에 사용하던 자가 행방불명 중이다. 아마 어느 책 속엔가 끼워져 있을 것이다. 그것은 그만큼 집에서 책을 읽는 것을 소홀히 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하루 빨리 잠자기 전에, 그리고 식사 후에 읽는 책을 읽어야 할 것이다. 또한 휴일에 읽는 책도 좀 읽어야 할 것이다.

 

자만 좋다고 끝이 아니다. 볼펜도 무척 중요하다. 일반 볼펜을 사용하면 볼펜 똥이 자에 묻고 결국 책에 번져서 얼룩이 심하게 진다. 볼펜은 사용할수록 똥이 많이 나와서 갈수록 책이 더러워져 사용할 수가 없다. 이런 저런 펜을 많이 사용해보았다. ^^ 

 

드디어 밑줄치기 좋은 펜을 발견했다. 몇 년 전에 Uni-ball micro란 일제 볼펜을 구입해서 사용했는데 똥이 나오지도 않고 밑줄이 잘 쳐지는 것이었다. 조금 번지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지질이 아주 나쁜 책이 아니면 번지지는 않는다. 좀 웃기겠지만 나는 책의 질이 좋고 나쁨을 이 펜으로 판단하고 있다. 출판사가 들으면 서운하겠지만 펜이 잘 받으면 좋은 책이요, 번지면 나쁜 책이 되는 것이다. 검정, 파랑, 빨강 3색이 있다. 밑줄 그을 땐 두 가지 색을 사용한다. 출근할 때 검정색을 사용하면, 퇴근할 때는 파란색을 쓴다. 혹시라도 독서시간 통계라도 내게 되면 구분하기 쉽게 다른 색을 사용하는 것이다. 계속 한 색으로 줄을 칠 때보다는 좀 덜 지루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좀 걱정되는 것은 이 펜이 언제까지 공급될까 하는 점이다. 만약에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지 않아서 판매를 하지 않으면 큰일이지 않은가. 평생 밑줄을 치며 책을 읽을 것이니깐 말이다. 지갑보다도 더 신경 써서 챙기는 것이 책과 그 부속품들인 자와 볼펜이다.

 

흔들리는 전철 안에서 혹은 버스 안에서 밑줄을 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별의별 자세를 다 취하기도 한다. 배 위에 책을 걸쳐 놓고 밑줄을 치기도 하며, 전철 문에 책을 기대어 놓고 밑줄을 치기도 한다. 자리에 앉기보다도 구석진 자리를 찾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좌석의 양 끝 쪽에는 보호대가 있는데 그 위에 책을 올려놓고 밑줄을 치면 이상한 포즈를 취하지 않아도 된다. 가끔은 앞뒤로 흔들리는 바람에 삐뚤게 밑줄이 쳐지기도 하지만 요즘엔 거의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진 않는다.

 

내가 밑줄을 똑 바로 치는 데는 또다른 사연이 있다. 아이들이 글씨를 참 못 쓴다. 정성 들여 깨끗하게 쓰라고 주의를 줘도 잘 먹혀 들지가 않는다. 딸 예지는 마음이 내키면 좀 정성 들여 쓸 때도 있지만, 아들 성준이는 언제나 대충대충 휘갈겨 쓴다. 글씨가 마음을 드러낸다며 깨끗하게 써보라고 해도 마이동풍이다. 어떻게 하면 글씨를 정성 들여 쓰게 할까 늘 고민이다. 글씨는 정말 마음의 표시인 것 같다. 나도 어려서부터 글씨를 잘 쓰려고 부단히 연습을 했다. 그래서 점점 더 잘 쓰게 되었다. 지금도 글씨를 쓸 때면 조금 더 잘 써보려는 마음을 갖곤 한다.

 

아이들이 아빠는 밑줄 하나를 칠 때도 정성을 들였다는 것을 나중에라도 알면 반성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 가능하면 똑 바로 줄을 치려고 노력을 한다. 내가 남겨준 책을 읽을 때 삐뚤삐뚤한 밑줄을 보면 혹 정신이 산만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고 말이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비뚤어지지 않게 하려고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어쩌다가 전철이 흔들려 어쩔 수 없이 빗나가기도 한다. 한 권을 읽으면서 한두 번이나 비뚤어질까 거의 바르게 치고 있다. 밑줄을 치면서 책을 읽다보면 중요한 구절을 한번은 더 마음에 새길 수 있는 이점도 있다. 이렇게 정성을 들여 밑줄을 치다보니 책을 읽는 속도가 많이 느리다.

 

요즘에는 어떤 마음까지 갖고 있냐 하면, 내가 열심히 밑줄을 치면서 책 읽는 모습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영향을 받아 책을 읽으면 좋겠다는 소망까지 품고 있다. 타산지석이라고 혹시 모르는 일이 아닌가. 저런 사람은 밑줄까지 쳐가며 열심히 책을 읽는데 나도 책 좀 보아야 하지 않겠느냐며 반성할 지도 모르지 않는가.   

 

이렇듯 밑줄 치는 것은 내게 있어 아이들에게 사랑을 전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하는 하나의 구도의식이다. 밑줄을 칠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지만, 이런 염원을 담아 열심히 책을 읽고 또 정성을 들여 밑줄을 치는 일에 몰입을 한다. 그러니 한 시간이 넘는 통근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가 아쉽기만 하다. 지루하다거나 짜증날 틈이 어디 있겠는가.

 

누가 직장이 있는 청담동에 고급 아파트를 준다고 해도 사양하겠다는 말은 헛말이 아니다. 아무래도 직장 가까이 살면 게을러지지 마련이라 책 읽는 시간이 사라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 그리하겠다는 것이다. 나는 좀 멀리 떨어져 있어도 행복하게 출.퇴근을 하고 있다. 언제나 책과 함께 하고, 또 책을 읽으며 정성을 들여 밑줄을 치는 게 즐겁기 때문이다.

 

 

 

[출처] : http://www.myinglife.co.kr/bbs/bbs.htm?dbname=D0216&mode=read&premode=list&page=1&ftype=&fval=&backdepth=&seq=48&num=46

 

 

 

교정: 2009 9/05 () 21:57 (역삼역) ~ 22:23 (경마공원역)

타이핑: 2009 9/12 () 21:47 ~ 22:09 (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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