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담벼락 이용자 여러분?

어제 저녁에 제가 올린 글을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제 아이피가 무슨 이유에선지  밴이 걸린 모양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포록시를 이용해 접속한 후 글을 쓰고 있는데 나중에 글이 잘 올라갈지는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이 제 글을 읽고 있다면 성공적으로 포스팅이 된 거겠죠.

저는 아크로 초창기부터 꾸준히 눈팅해온 사람이고 주로 담벼락이긴 하지만 잡글도 몇개 올린 적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아크로 단골 고객 중 한명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이번 아이피 밴 걸린 걸 계기로 아크로에 발걸음을 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포록시를 통해 접속하면 계속 이용가능하지만 그런 불편을 감수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 이유는 한 마디로 아크로 접속을 통해 제가 얻을 수 있는 게 이젠 거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크로 접속을 통해 제가 얻을 수 있는 건 실망과 반감, 그리고 혐오감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이 아마도 저의 마지막 아크로 접속이 될지도 모르는데, 그냥 제 개인적 이야기나 좀 주저리주저리 남겨 보겠습니다.
혹시라도 읽고 공감하시는 분이 한 분이라도 계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그렇지 않더라도 오랜만에 제 마음의 한자락을 정리하는 계기가 될 수 있으니 이 글을 올리는 시간과 노력이 전혀 헛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남은 어떻게 볼지 모르지만 제 스스로는 저를 다분히 반골기질이 있는 좀 골치아픈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적으로 말해 좀 부당하다 싶은 것은  그대로 넘어가지를 못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또 아주 심한 독종까지는 아니기에 끝장을 볼 때까지 죽자살자 물고 늘어지고 그런 건 아닙니다만,
어쨌든 제 기준에서 봤을 때 '이건 아니다' 싶은 것은 웬만해선 그대로 지나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제가 성격이 별로 대차지 못하면서도 학생운동에 뛰어들고
그래서 얼떨결에  빵에도 몇 번 다녀오고 한 게 아마 다 이런 반골기질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웬만큼 했으면 중간에 정신 차리고 제  앞가림에 힘써야 하는데
하여튼 시작은 남들하고 비슷하게 했지만 남들보다 훨씬 늦게까지 소위 그  '부당함'과 씨름을 한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그 버릇 못 고치고 있습니다.

근데 참 신기한 것이 한국사회에선 그  '부당함'이란 게 항상 강하고 쪽수도 많은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그 '부당함'에 맞서는 저의 포지션은 대부분 절대적 혹은 상대적 '소수'였던 것 같습니다.
그 때문에 한 때는 '아웃사이더' 혹은 '마이너리티'가 저의 타고난 운명이 아닌가 생각했던 적도 많았고
사실 지금도 그런 느낌이 완전히 가신 건 아닙니다. 

혹시 제가 '다수파'인 적은 없었는지 한번 돌아보니 초중고 어린 학창시절을 빼고는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굳이 들자면 학생운동 시절 노선투쟁에서 잠깐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나이들어서는 1997년 대선 때와 2002년 대선 때 투표결과에서 잠깐 다수파였던 적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그런 경험도 굳이 따지고 들어가면 제대로 된 다수파가 아니라,
제한된 소수파 내에서의 상대적 다수파든지,
아니면 그야말로 일시적이고 현상적인 다수파로 실제적으론 여전히 소수파였던 그런 시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하긴 상대방을 나쁜 강자의 위치에 놓고 스스로를 선량한 소수파와 피해자로 자리매김하려는 게
저를 포함한 소위 '진보개혁성향' 사람들의 상당히 일반적인 특성인데, 
어쨌든 그런 점을 고려하더라도 저의 삶이 주로 '소수파'로서의 궤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고
그래서 시쳇말로 약간 '찌질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습니다.     

저의 '찌질함'을 정치성향 면에서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198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에게 투표한 이래 20년 동안 현재의 민주당 계열을 지지해 왔습니다.
각종 선거에서 김대중 후보와 민주당 계열(평민당, 통합민주당, 국민회의, 새천년 민주당...) 후보들에게 투표한 것은 기본이고
각종 정치적 사안에서 민주당 입장을 일관되게 지지해 왔습니다.  

사실 저의 정치이념에 비추어 볼 때 지금의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 계열에 투표하는 것이 더 합당하겠지만,
결과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나마 '덜 찌질해 보이려고' 그랬을 수도 있고, 혹은 '이념'을 버리고 '현실'과 타협해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한국사회의 절대 강자(지금의 한나라당 계열과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소위  보수세력)들이 보여주는
정말 뻔뻔스런 '부당함'에 대한 강한 반감 때문이었지 않나 싶습니다.  
그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특정지역과 특정 정치집단을 부당하게 매도하고 공격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찌질한' 저에겐 정말 참기 힘든  고역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가장 미워하는 것을 저는 사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987년 대선 때 저는 통일민주당사에서 후보단일화를 요구하며 농성을 하였고(투표는 물론 김대중),
노태우가 당선되던 날은 구로구청에서 백골단이 휘두른 몽둥이에 대가리가 터졌습니다.
1992년 대선 전야에는 수백통의 전화를 하였으나 엄청난 표차로 패배하자 3박4일간 실의에 빠져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김대중 씨가 영국으로 떠난 후엔 제가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개같은' 조선일보 반대 운동밖에 없었습니다. 
정말 그 당시엔 아침에 밥 먹으면서 조선일보 보고는 하루종일 소화불량으로 고생하곤 했는데(밖에선 조선일보 엄청 욕하고 다님),
지금 생각하면 왜 개고생하면서도 조선일보를 그처럼 악착같이 봤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한겨레와 조선일보를 같이 봤는데, 아마도 그래야 전체적인 판을 볼 수 있고, 저들의 의도를 좀 더 잘 알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그 덕분에 무슨 사건 터지면 다음날 조선일보에 어떤 제목이 뜰지 거의 99% 확률로 예측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1997년 대선 때에는 승리의 가능성이 보였기에 1987년이나 1992년보다 10배는 더 미친 듯이 선거운동(?)을 하였습니다. 
대선 승리 후 졸지에 여당 지지자가 되어서 약간 어색했지만, 진짜 본격적인 싸움은 그 때부터였습니다.
조중동의 발악적인 왜곡 편파 보도에 맞서 본격적인 안티조선 운동에 열을 올렸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때가 참 재미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이런저런 정파로 다들 갈라졌지만, 그 때만 해도 안티조선, 친국민의 정부란 느슨한 카테고리로 모여서 나름 발랄하고 참신하게 놀았던 것 같네요.  특히 기억에 남는 건 2000년 남북 정상회담과 김대중 대통령 노벨상 수상이군요. 그 때도 조중동과 보수 네티즌들의 악의적인 비방이 많았는데, '꼬우면 니들이 정권 잡든가' 하면서 제법 여유있게 대응하던 기억이 납니다.

국민의 정부 막바지에 옷로비 사건이나 홍삼트리오 사건이 터졌을 때는 약간 쪽팔려서 정부를 대놓고 옹호는 못하고
어쨌든 뻥튀기하여 편파보도하는 조선일보 욕만 디립다하고 돌아다닌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안티조선 내에서도 지역주의 문제로 논쟁이 좀 있었던 것 같은데, 그래도 다들 386으로서의 동류의식이나 반한나라당 동지의식이 있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당시 민주당 정권이어서 그랬는지 어쨌든 지금보다는 훨씬 더 차분하고 젠틀하게 진행되었던 것 같습니다.  

2002년 대선 때는 다른 분들과 마찬가지로 노무현 선거운동했고요, 다른 것 다 떠나서 노무현 제법 멋있었잖아요?
나중에 속았다는 분들도 많이 보았지만, 저는 별로 그런 생각 안합니다.
나는 노무현이 어떤 사람인지 나름 알고 있었고, 노무현은 죽을 때까지 내가 알고 있던 그 사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노무현은 '소수파 중의 소수파' 대표(?)여서 그랬는지 몰라도 반골 성향의 제 마음에 제법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노무현을 비난하는 세력들의 논리나 주장이 제가 보기엔 예나 지금이나 심히 '부당하다'고 생각하기에
저는 그 '부당한' 세력들이 미워하는 노무현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역시 '찌질이'는 어쩔 수가 없는 법이죠.

물론 노무현의 언행이나 정책 중에는 제 마음에 차지 않고 심지어는 실망스런 것들도 꽤 있었죠.
그래서 나중에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 지지를 철회하고 비난 대열에 합류할 때 저도 약간 흔들렸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실제로 노무현이 얻어 먹은 욕만큼 그렇게 나쁜 것인가 하면 제 생각엔 대부분 별로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노무현 반대세력들(여러 부류가 있죠)이 '부당하게' 노무현을 깔 때 '그건 아니잖아'라고 응수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사이엔가 저는 '못말리는 노빠'가 돼 있더군요.

사실 저는 노무현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입장이 아닙니다. 그냥 나쁘지 않은 괜찮은 대통령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대신에 저는 노무현을 '부당하게' 씹어대는 사람들은 상당히 경멸합니다.
턱도 없는 이유로 노무현을 씹어대면 상대가 누구라도 그냥 치받아버립니다.
제 '찌질이' 근성이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게 합니다.
예전에 김대중이나 호남을 턱도 없는 이유로 씹어대는 사람들을 박아버리던 것과 본질상 같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김대중 광신도'가 오늘 '노빠'가 된 이유는 순전히 고넘의 '찌질이 반골 근성'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발끈하실지 모르지만 유시민에 대한 제 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유시민도 욕 먹을 게 많습니다. 제가 보기엔 유시민은 정치 지도자로선 장점보다 단점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유시민이 욕먹는 것 보면 '제 입장에선' '합당한' 이유보다 '부당한' 이유가 더 많습니다.
(그게 뭐냐고 따지지 마십시오, 그냥 제 기준입니다) 그래서 그런 '부당한' 비난에 대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딴죽을 걸게 됩니다.
그러면 바로 빽빠지나 유빠가 됩니다.  
그런 조롱은 아무 문제가 아니지만 아무튼 그런 설왕설래 과정에서 이런저런 신경을 쓰게 됩니다. 
상대방이 터무니 없는 말을 하면 꼭 한 마디 안할 수 없거든요.

그러다 보니 피차 피곤해집니다. 다른 사람들은 말할 것 없고 우선 제 자신이 너무 피곤합니다.
특히 나이가 들어가니 '이거 내가 뭐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조중동이나 한나라당 정치인들이 하는 말을 빼놓고
소위 온오프의 장삼이사 수구꼴통들이 하는 터무니 없는 말은 진작에 못 본 척 받아넘길 정도가 되었더랬습니다.

그러나 한 때 동지였고 앞으로도 같이 할 가능성이 많은 사람들이 하는 터무니 없는 말들은 '반골 찌질이'로서 정말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게 다 부질 없는 짓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산다...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좀 다르지 않을까 생각한 제가 바보입니다.  

역시 '찌질이'다 보니 마지막이 찌질스럽게 마무리되네요.
어쨌든 이상이 그동안 제가 담벼락에서 일부 분들의 심기를 거스른 나름의 이유입니다.
그리고 이번 아이피 밴을 계기로 아크로를 떠나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저들을 알기 위해 조선일보를 오랫동안 구독했지만 남은 건 위궤양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과감히 끊었더니 최소한 온종일 속쓰렸던 증세는 사라졌습니다.
가끔씩 조선일보가 궁금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구독은 안 합니다.
담벼락이 가끔씩 궁금할 때도 있겠지만 프록시 통해서 들어오는 불편을 감수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모쪼록 담벼락 님네들, 다들 건강하시고, 님들이 원하는 좋은 세상 꼭 보시길 바랍니다.
안녕히.